[참가수기]함께 내 딛는 발걸음 강*석
2018.11.24
중앙마라톤을 처음 달리리던 2000년 가을 잠실운동장 연못에 비친 내 얼굴에 매혹된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육체를 감상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고 급속도로 변화하는 산업사회를 지나면서 나의 몸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그 때 나의 몸은 오로지 생명유지에 필요한 생산적 노동의 도구였다.

중앙마라톤 하프 2회(2000년~2001년)달리고, 풀코스가 신설된 2002년부터 올해 Jtbc서울마라톤 까지 17회를 연속해서 달렸다. 처음 달릴 때는 오랜동안 달릴거라 작심하지 않었다. 길 섶 샛노랗게 물든 단풍잎들이 와사등(瓦斯燈)처럼 비춰 눈을 휘둥글하게 호사하고, 낙엽 떨구는 이별 의식에 하객으로 초대받아 주자들 머리위로 개선장군 환영하듯 휘날린다. 주로의 사물들과 교감을 나누고 응원객들의 손사례에 힘을 얻어 완주했으며 시나브로 숫자는 늘어났다. 할려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몸에 이상이생겨 부상이 오거나 연습을 게을리하면 대회에 나설 수 없다. 항상 몸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현악기가 너무 느슨하지 않고 당기지 않게 조율해야 소리를 잘 낼수 있는 것과 같이 몸맨두리를 잘 갖추었다.

연연이 이어달리면서 등고자비하는 마음으로 달렸다.달릴 때 오감은 생각과 감정과 자료를 대어주고 생각과 감정은 말과 행동과 느낌을 만들고, 그것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고, 나의 성품이 되었다. 달릴 때 몸에서 적절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쾌감을 느끼고 올바른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발을 흩 뿌려 딛게하고,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었다. 우리 인체는 향상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의 몸도 달리기에 적응되어 갔다.

매 년 달리는 습관속에 시나브로 따르는 것이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육체는 사유재산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구조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한편으로는 자본 다른 한편으로는 숭배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아름다운 용모와 멋진 몸매는 위새 상품처럼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신분을 규정해 준다. 마라톤을 통해 나의 몸을 잘 보살펴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마음까지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완주 기록은 늦어지지만 서지않고, 멈추지 않는다. 청년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달리면 초로의 늙은이도 젊은이라며 으쑥댄다. 달릴 때 젊은이로 되 돌아간다. 주로의 태양이 성실하고 근면하고 나태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주자들을 향해 환히 비추었다. 햇볕을 볼록렌즈에 모아 종이를 태우듯 집중하고 몰입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꾸준함, 지구력, 노동력이 몸에 내재돼 있어 직장의 끈을 붙잡고 있다. 삶에 반영했다.

언제나 집을 나서면 마라톤에서 선을 따라 달리는 것처럼 사회에서 률을 지키고, 나만의 질서와 배려, 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마라톤으로 들이는 뱃살이 있고, 아파봐서 아프지 않다. 땀방울 숫자 만큼 의료, 복지비용을 줄일 수 있다. 나에게 소요될 복지나 의료비용이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할수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초고속으로 고령화 되고 있다. 마라톤은 사회적인 게임으로 청년과 중,장년층이 개시라는 끄나풀로 연결되어 하나가 된다. 청년이 앞에서 끌고 중,장년이 뒤에서 밀며 함께 하는 멍석으로 작용해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운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함께 사는 건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지혜를 터득 할수 있는 사회적인 게임 마라톤이다. 중앙마라톤과 서울 jTBC마라톤을 이어서 달리는 것은 나도 젊은이라며 함께 내 딛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어서 입니다. 그러할 때 가을 주로가 홍엽여화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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